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경향신문] 2007년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암연구소는 ‘야간교대근무’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그만큼 야근은 노동자의 건강에 해롭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매주 발암물질에 노출되면서도 정당한 수당마저 제대로 청구할 수 없는 현실 속에 놓여 있다.

노동자들은 만약 야근수당을 다 챙겨 받는다면 본봉보다 야근수당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해가며, 노상 이어지는 야근을 견딜 뿐이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이소담 옮김·양경수 일러스트/오우아)는 이른바 ‘사회인의 상식’, ‘일반적인 직장문화’라는 명분 아래 용인되어온 열악한 노동조건을 뒤집어보고, 그 속에서 매일 야근을 밥먹듯하며 살아가는 개개인의 안부를 묻는다.

동시에 ‘사축(회사에 매인 가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의 노동자들도 십분 공감하며 읽을 수 밖에 없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책에 나오는 일러스트 일부와 글을 출판사 동의를 얻어 소개한다.

 

■유급휴가는 왜 쓰기 힘든가

 

오우아 제공

회사는 사원 모두가 주어진 유급휴가를 전부 사용한다는 전제로 업무 일정을 짜지 않는다. 대부분 달력에 평일이라고 표시된 날에는 예외 없이 전부 출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전제로 계획을 세운다.

그렇기에 유급휴가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여겨진다.

혹시 유급휴가를 사용하더라도 가족 중에 누가 아프다거나 본인의 몸 상태가 안 좋다거나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때로만 한정된다.

 

■‘일님’의 광신도들

대다수의 회사는 모든 사원이 일을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관을 지녔다고 전제하고서 매일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

직장에서 사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하면 “어린애처럼 허튼소리하지 마!”라는 합창에 짓눌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일 지상주의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한, 유급휴가를 다 사용할 수도 없고 야근도 사라지지 않는다.

서비스 야근이나 과로사를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일님’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에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괴로움이 별것 아닌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영자 마인드로 일하라고?

노동자의 권리는 경영자의 관점에서 보면 전부 번거로운 일이다.

경영자는 노동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야 좋다.

고용된 입장에 불과한 일개 종업원에게 경영자 마인드를 요구하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경영자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은 동료들이 회사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꾹 참으며 일하는 와중에 혼자 종업원의 태도를 유지하며 권리를 챙기는 사람을 ‘제멋대로인 녀석’이라 여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끼리 유급휴가를 쓰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거나 정시에 퇴근하려는 사람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한데, 이 모든 것이 경영자 마인드에서 비롯된다.

 

■근무 조건 대신 ‘보람’과 ‘성장’만 말하는 회사 설명회

 

회사 설명회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람’과 ‘일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말한다.

보람을 느끼며 일하는 선배 사원이 단상 위에서 올라 입사 희망자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이야기하고, 사장이 나서서 ‘우리 회사가 개인의 성장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열심히 내세운다.

‘보람’이나 ‘성장’은 입 아프게 이야기하면서 연봉이나 평균 야근시간 같은 ‘근무 조건’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군사훈련처럼 진행되는 신입사원 연수

 

신입 연수의 일반적인 목적은 비즈니스 예절이나 기술, 회사의 업무 내용 등을 배우기 위함인데, 일부 회사에서는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는 연수가 이루어진다. 한때 아래와 같은 연수를 시행한 회사가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역 앞에서 목청껏 사가(社歌)를 부른다

-자루를 짊어지고 마라톤을 한다

-팀을 이루어 땅에 구멍을 판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등산하고, 텐트에서 생활한다

-‘나를 버리기’ 위해 남 앞에서 고릴라 흉내를 낸다.

-병영 체험에 참가한다.

 

이런 회사는 말도 안 되는 명령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는 사원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업무 지식보다 순종적인 태도를 중시한다.

그렇기에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군대식 연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연수의 목적은 신입사원이 어떤 명령에도 순종하는 병사가 되도록 ‘세뇌’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주 5일제로 일하면서 평균 2.3일을 야근한다.

반듯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취업했던 것처럼, 오늘도 퇴근 시간을 넘긴다.

물론 야근수당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금기다.

‘오후 6시 정각에 칼퇴근하고, 초과 수당을 일일이 계산하는 건 얌체들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나는 성숙한 사회인인데…’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에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저자 히노 에이타로는 말한다.

“일의 보람이라는 저주에서 빠져나와라.”